의령여행 정곡면 백곡리 감나무
백곡리마을의 옛이름은 중촌이라 불리었습니다.
마을에 중촌경로당이 있는것을 보고 알수 있습니다.
백곡리 마을로 들어서니 들판은 황금물결을 이루고
집집마다 자라는 감나무에는 맛있는 감들이 잔뜩 열려있습니다.
어릴적 시골집에 가면 동네 어디서나 감나무를 볼 수가 있었습니다.
어른들이 긴 장대로 감을 하나 톡 따서 저의 손에 쥐어주었던 아름다운 기억이 떠오릅니다.
감나무에 소도 묶어 놓고 긴 밧줄을 묶어 어린 소녀들은 그네를 타기도 하였죠.
감나무는 너무나도 친근한 존재인것 같습니다.
마을집 담벼락에 있는 간나무에 감이 열려있습니다.
보기만 하여도 맛있어 보이네요.
마을 그늘쉼터역할을 하고 있는 나무를 지나 조금 더 걸어가면 수령이 450년이나 되는 우리나라 최고의 감나무가 있습니다.
국가에서도 이 점을 인정하여 2008년 3월 12일 천연기념물 제492호로 지정하였으니까요.
보통의 감나무의 수명은 200~250년 정도인데 백곡리의 감나무는 배 이상을 살아온것입니다.
이 감나무는 원래 백곡리의 당산나무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당산나무의 역할을 하지 않고 있다네요.
오랜 세월을 힘겹게 지내온 만큼 상처도 많습니다.
밑둥은 공간이 생겨 메꾸어 놓았고 환기를 위해 환풍구도 부착하여 놓은 모습입니다.
이제 열매가 열리지 않는 감나무이지만 문화적 가치를 높이 사는 나무인데 노거수 중에서도 우리나라 고유의 유실수라는 점이
인정을 받았습니다.
나무의 크기를 알아보니 나무높이 28m·가슴높이의 줄기둘레 4m 정도이며, 잔가지 보다는 굵은 가지가 많은 편입니다.
이곳 백곡리에는 예부터 전해오는 한편의 시가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4백년 전, 마을을 세웠던 진사공(進士公) 전호우(1569-1929)라는 분이 200년 된 감나무의 꽃을 관찰하며 쓴 시가 내려옵니다.
감나무꽃을 바라보고 쓴 그 감나무가 바로 지금 이자리에 서있는 감나무란 사실입니다.
이 감나무는 6백년 풍상을 겪으며 한 마을의 역사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 시를 한번 읆어 볼까요.
<枾木花>
宜春白谷內村珍 의춘(*의령) 백곡리 골안마을에 보배(감나무)가 있는데
疑是爭高可幕山 하도 커서 가막산(*마을산)과 높이를 다투네
流轉高陽雙百過 고양(*본관이 경기도 고양)을 떠난 지 어언 200년
何年誰種至今환 언제 누가 심어 지금에 이르렀나.
花如玉甘酸味 구슬같은 감꽃은 시고 달아서
貪食戱童總出顔 아이들 식탐 내며 얼굴 내미네.
亂麥吾田不禁踏 일렁이는 우리 보리밭 들어와도 막을 수 없으니
讀書無日輒崩閑 독서하는 한가로움 문득문득 깨지네.
그리고 우리나라 민요에도 감꽃이란 곡이 있답니다.
"감꽃 모진 꽃아 오막살이 삼대째 토백이꽃/
갑오년 상투 튼 우리 할배 죽창 세워 낫 갈아 고개 넘어/
영영 못 오실 길 떠나가신 것을 감꽃 모진 꽃아 너는 보았겠지/
모진 세월에 우리 아배 식은 밥 말아 묵고 싸리나뭇길/
지리산 줄기 따라 가신 것을 감꽃 모진 꽃아 너는 보았겠지/
그래 감꽃아 보았겠지 애비 잃고 땅도 빼앗긴 이 내 설움도/
울 아배 못 잊어서 불끈 쥔 두 주먹도/
감꽃 모진 꽃아 오막살이 삼 대째 토백이꽃"
우리에게는 오래전부터 친근하게 지내온 감나무가 지금도 우리를 보담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 온 시간 보다 더 오랜 시간을 지내오면서 역사를 지켜보았던 우리의 감나무가 동네마다 있습니다.
그중 가장 오랜 수령을 가지고 있는 의령 백곡리 감나무를 먼저 방문하여 보시는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