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이 많은 지심도를 다시 걷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 곳 지심도를 찾아 왔습니다
난간이 특이하여 따라가 보았습니다
우와 입구의 동백나무 무지 큽니다^^
지게도 현대화로 나무에서 쇠파이프로 바뀌었습니다^^
전망이 꽤 괜찮은 곳이네요^^
앗 많이 본 깃발이다 싶어서 보니
1박2일 강호동이 다녀간 곳이군요^^
이곳 주인 어른분은 곧 밀어닥칠 민박예약손님 맞이 하느라 청소하신다고 분주하십니다^^
바쁘신데 부담될것 같아서 그냥 빠져 나왓습니다
아주 멋쟁이 전기자동차이네요^^
조경을 한 동백나무가 멋있습니다^^
이 집도 옜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네요^^
동백꽃과 잘 어울리는 붉은색을 칠한 창고 입니다^^
지심도에 동백만 있는것이 아니더군요^^
또 다른 민박집을 보았습니다
이 민박집에서 바라 보이는 아랫민박집의 모습인데
많은 분들이 자리에 앉아 잠시 쉬고 있는것 같습니다^^
소재지;경상남도 거제시 일운면 옥림리 건설시기;1935 , 11, 30 ~ 1936, 1, 27 지심도 포대는 일본의 중국침락을 2년 앞두고 계획되었으며,1941년 태평양전쟁 당시 양지암 기지와 함께 진해해연방비부대에 소속되어 미연합국과 일전을 준비하였던 곳이다.지심도 포대설치는 1935년 11월 30일 구 일본군 참모본부에서 포대건설계획서를 작성하면서 시작됐다. 1936년 4월 23일 일본육군축성본부는 지심도에 거주하고 있는 10여 가구를 강제 이주시키고,같은 해 7월10일 포대를 착공하기에 이른다. 일본군은 지심도 내에4곳의 포대를 설치하는데,45식 15밀리 캐논포 4문,38식 기관총,96식 측원기등을 각각 배채했다. 총예산 1백45만5천원을 투여하여 군 막사,초소,경계표찰 등이 1938년 1월 27일 완공되었다,또한 지심도 포대를 보호하기 위해 1936년 7월 8일 지심도 헌병분주소를 설치하고 총 4명의 인원을 배치하였다. 지심도 포대에는 일본군 1개중대 약 100여명이 주둔하고 있었다.포진지 4곳은 모두 원형으로 동일한 형태인데 직경 18m의 방호벽을 만들고 그 안에 직경 4m의 포대를 만들었다.방호벽의 높이는 1.5m정도이고 남쪽과 북쪽에는 계단을 만들었다.지심도 포대 4곳은 견고한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로서 현재도 원형 그대로 잘 남아있다.지심도 포대는 한반도 전역을 일제의 병참기지화로 만들겠다는 계획에서 나온 것이다 |
태양광 발전설비가 있다
아마 이곳 포진지의 관광안낻및 조명에[ 들어가는 전기를 생산하는곳 같다
소재지;경상남도 거제시 일운면 옥림리 건설시기;1935, 11, 30 ~ 1936, 1, 27. 탄약고는 1935년 11월 30일 ~1936년 1월 25일 사이 지심도 포대를 건설할 때 함께 건설되었다. 내부는 전등을 설치하였고, 탄약이나 포탄을 저장하던 곳이라콘크리트로 되어 있으며 지하 벙커식으로 4개의 방으로 나뉘어 있다. 탄약고 안에는 45식 15밀리 캐논포 탄환 38식 기관총 탄환 등 각종 화역을 보관하고 있었다. 1936년 5월 7일 현재 38식 기관총 고사포구 38개,캐논포 탄환 10개를 보유하고 있었다. 탄약고의 외부 좌우에 환기구 역활을 하는 구멍이 2곳이 있으며,내부에서 외부로 연결되는 항아리 모양의 수로를 설치했다. 이러한 방식은 4곳의 탄약고에도 똑같이 적용됐다,당초 탄약고는 포대와 가까운 거리에 설치되어 포탄이나 탄약을 운반하는데 편리하도록 건설되었고,4곳 모두 정문은 부산쪽 방향이며,후문은 쓰시마방향이다. 또한 모두 탄약고는 비탈진 곳에 은폐되어 있어 눈에 쉽게 발견하 수는 없다. |
탄약고 안으로 들어가 봅니다
탄약고를 나오니
가족들이 보는 가운데 포진지에 내려가서 자세를 잡고 있는 어린아이의 표정에
전쟁의 역사가 다시 일어 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 일어납니다!
탄약고 앞에도 여전히 동백꽃이 저를 반깁니다^^
저 일행들도 저와 같은 생각이겠지요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이 없기를 하는 마음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