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전라남도

전남 보성여행 서재필 기념공원

워크뷰 2018. 1. 31. 06:00

전남 보성여행 서재필 기념공원

 

 

전남 보성여행을 왔습니다.

오늘은 보성의 북부지역에 있는 서재필 기념공원을 찾아왔는데요

오는 길이 아름다와 주변경치보느라 언제 이곳에 도착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의 온도가 -10도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서재필기념공원의 부변에는 들판이 얼어붙어 있는것을 볼수 있습니다.

 

서재필 기념공원 입구에 들어서면 탑이 하나 보이는데

이 탑은 보성군 독립유공자 추모탑입니다.

 

입구에는 안내판을 잘 만들어 놓아

전체의 개념도와 서재필 기념관의 목적을 알수 있습니다.

 

18세 나이로 갑신정변 주역 중의 한 사람이었던 서재필은 그 후, 미국으로 망명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양의사가 됩니다.

하지만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독립신문을 제작하고 독립문을 만드는 등 평생을 독립운동에 몸바쳤습니다.

 

여기에 있는 독립문은 한국 최초의 서양식 건물이랍니다.

우리나라의 영구 독립을 선언하기 위하여 독립협회가 서재필 선생의 제안으로

 중국 사신을 영접하던 서울특별시 서대문구에 있던 영은문을 헐고 그 자리에 세웠습니다.

여기에 있는 독립문은  서울에 있는 것과 똑같은 크기로 지었답니다.

 

송재 서재필선생의 동상이 보입니다.

동상을 보는 순간 묘한 감정이 생기더군요,

저라면 선생처럼 행동을 할수 있었을까 라고 말이죠.

 

한 공간에 포토존을 마련하여 서재필선생과 함께 사진을 찍을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 날씨 아직 춥습니다

장갑을 끼었는데도 손이 얼얼합니다.

서재필 기념관으로 들어가 봅니다.

 

액자에는 독립운동 현장의 사진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2018년 1월 이 달의 옥립운동가로

한국독립운동의 숨은 조력자!

임시정부를 후원한 선교사

조지 애쉬모어 피치가 선정되었네요

 

기념관 구조를 알 수 있는데

1전시관과 2전시관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제1전시실로 들어가면

 

푸근한 인상을 하고 있는 서재필선생의 사진을 만나게 됩니다.

 


1전시관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보이는게 독립신문입니다.

이 독립신문은 최초의 민간신문이자 한글신문이었습니다.

 

서재필선생은 1864년에 태어나셨으며 과거에 최연소 합격하였습니다.

 

갑신정변을 일으킵니다.

 

그리고 독립신문 창간, 독립협회 조직, 독립문을 준공합니다.

 

태극기의 변천사를 알수 있습니다.

 

학생들이 관람하러 오면 여기 퍼즐을 체험할 수 있게 하는가 봅니다.

 

미국에서의 독립운동에 관하여 알수 있습니다.

 

서재필선생은 3.1운동 발발 소식을 들은 직후 이승만. 정한경 등 미주 한인대표들과 함께

필라델피아 독립행진을 실시하며  제 1차 한인회의를 개최해 한국 독립의 열망과

새로운 독립국가건설의 방향을 만방에 알립니다.

 

여기서는 제2전시실입니다.

 

제2전시실에서는 서재필선생의 미국생활을 알수 있습니다.

 

서재필 선생이 소장하고 있던 독립문 모형입니다.

 

의사로서의 서재필 일대를 알수 있습니다.

 

나라가 광복을 한 후

나라를 떠난지 50년만에 귀국하게 됩니다.

 

그러나 소련과 일본의 방해로 서재필선생은 다시 미국길로 오릅니다.

독립신문에서 두 나라를 강력하게 비판하였기 때문이지요.

 

서재필 선생은 1951년 1월 11일 Media News에 그의 약력과 함께 소개합니다.

 

서재필의 유골을 안치했던 교회 납골당의 모습입니다.

이후 1994년 4월 유골을 봉환하여 국립묘지에 안장합니다.

 

그의 고향인 보성에 기념공원을 조성하게 됩니다.

 

서재필 선생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나오네요.

 

고종이 하사한 불란서식 탁자와 의자

 

이제 사당으로 갑니다.

 

사당에는 서재필선생의 영정이 올려져 있습니다.

 

이제 구름다리를 건너 조각공원으로 갑니다.

 

여러 조각품이 전시되어 있는 공간입니다.

 

뒤돌아서 독립문을 다시 바라보니

서재필선생의 모습이 보이는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