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서보면 실망합니다
도로확장공사에 의해서 학을 상징하는 날개는 사라져 버렸고 주변은 온갖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우선 기장의 청강4거리에서 버스에서 하차합니다
곧 죽성입구라는 마을버스 정류장이 보입니다
기장 보건소가 곧 나타나고요
건강한 소도 보입니다
신천이란 마을버스정류장입니다
정류장 뒤로 기장군청이 보입니다
마을로 들어가니 담장이 정답습니다
마을 빨래터가 보입니다
다시 큰길로 나와서 계속 걷습니다
얼마전 들렸던 남산봉수대의 다른 진입로가 보입니다
남산봉수대 게시글 볼가기-->적의 침략사실을 알려라! 부산 기장군 남산봉수대를 오르다
생선을 말리는 모습이 어촌임을 알려줍니다
저 멀리 기장해송이 보입니다
이 마을이름이 원죽이군요
돌담이 정겹습니다
하얀등대가 보입니다
작은배들은 이렇게 묶어두나 봅니다
앞에 무언가가 보입니다
황학대 안내판에 이곳의 소개가 잘 나타나있습니다
요즘 부산에는갈맷길 이정표가 이런 디자인으로 새롭게 설치되고 있군요
황학대에 올라서서 보이는 장면입니다
고산 윤선도가 기장에서 7년간이나 긴 유배생활을 한 것도, 그리고 이곳에서 견회요와 우휴요 등 주옥같은 시 여섯수를 남긴 것 역시 아는 사람이 극히 드물다. 조선시대 정철 박인로와 함께 3대가인으로 시조문학의 최고봉을 이룬 윤선도는 30대인 1616년 당시 국사를 마음대로 주무르고 전횡하던 영의정 등의 죄상을 밝히는 상소문을 올린 것이 화가 되어 함경도 경원으로 유배되었다. 경원에서 1년을 보낸 뒤 고산은 다시 기장으로 이배되었다. 유배생활에 들어간 고산은 백사장 건너에 있는 송도를 ’황학대’라 이름짓고서 이곳을 매일 찾았다.수십그루의 노송에 쌓여 있는 황학대를 옛날 신선이 황학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중국 양자강하류의 이태백 도연명 등 많은 시객들이 찾아 놀던 황학루에 비교했었다. 고산은 이곳에서 갈매기와 파도소리를 벗삼아 한많은 시름을 달래곤 했다. 아무튼 죽성에서 유배생활을 하는 동안 고산은 많은 서적들을 어렵게 구해 탐독했으며 여가를 이용, 마을뒤에 있는 봉대산에 올라 약초를 캐어 병마에 시달리는 죽성사람들을 보살피곤 했는데 이곳 사람들은 고산을 서울에서 온 의원님이라 불렀다고 여태껏 구전되어 오고 있다. 377년전 고산이 이곳에 유배되어 올때는 초가 몇채와 아름다운 백사장 그리고 죽성천에서 내려오는 맑은 강물이 해수와 어울렸고 그 옆에는 부엉산이 있어 부엉이의 울음소리는 천길 만길 낯설은 땅에 던져져 있는 고산의 쓰린 마음을 더욱 안타깝게 했으리라. 이 황학대에 자생하고 있는 30여그루의 해송이 지난 95년 수해로 뿌리가 뽑히는 등 피해를 입어 뿌리 기능 상실, 수세쇠약과 각종 병충해 발생 등으로 고사직전의 위기에 처했었다. 이에 따라 우리군에서는 1천만원의 예산을 확보해 엽면시비 살포, 영양제 수간 주사 등 소나무 살리기에 온 힘을 쏟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