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 여행 문화유적코스 가볼 만한 곳 임란북천전적지
상주 관광안내책자에 나와있는 여행코스에 문화유적코스가 있어 그대로 따라가 보기로 합니다.
지난 포스팅 상주향교에 이어 이번엔 임란북천전적지입니다.
임란북천전적지?
글을 줄여 놓으니 기본지식이 없으면 무슨 말인지 모를 글입니다.
글을 풀어 본다면 임진왜란 당시 북천지역에서 전투를 벌였던 장소란 뜻입니다.
북천이란 상주 시내를 흐르는 하천의 이름이며 이곳 자산이란 마을에서 격전을 벌였던 장소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우리는 너무나 아픔을 느끼게 됩니다.
비록 일부이지만 먼저 관군의 장수들이 먼저 도망을 갔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백성들은 심한 배신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렇지만 백성들은 나라를 배신하지 않고 삽이며 곡괭이를 들고 의병을 일으킵니다.
예나 지금이나 나라를 지키는 사람은 고위급 공무원이 아니라 일반 시민들이란 게 참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이곳 상주 임란북천전적지는 이야기가 다릅니다.
관군과 의병이 힘을 합세하여 왜적과 결사 항전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점에서 이곳 임란북천전적지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매일 무술을 연마하며 전쟁을 통하여 실전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과
농사일만 하며 살아온 사람이 서로 전쟁을 하게 된다면 누가 이길까요?
답은 정해져 있었습니다.
매일 전쟁을 해온 사람이 이기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겠지요.
다시 말하면 매일 전쟁을 해온 일본군과 200년 이상 전쟁 없이 살아온 우리 조선군의 전쟁준비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적을 막아야 할 고위급 장수가 겁을 먹고 미리 도망가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보는 백성들의 마음 정말 암흑일 것입니다.
나는 농사지으며 군량미로 세금을 낼 테니 당신은 군사를 이끌어 나라를 잘 지켜주시라고 했는데
평화 시에는 혜택만 누리다가 막상 전쟁이 터지니 자신 혼자 살겠다고 도망을 가다니 너무 어이없지 않습니까?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합니다.
이를 막기 위해 조선의 중앙군 약 60여 명이 남쪽으로 내려와 상주에서 전투준비를 합니다.
중앙군 60여 명은 의병과 합세하여 900여 명 이 되었으며 왜병을 막을 준비를 합니다.
그러나 병력부터 확연한 차이가 납니다.
900명 vs 17,000명
수적으로도 상대가 안 되었습니다.
상황이 이러니 싸움도 하기 전에 순변사 이일은 성을 버리고 도주합니다.
그러나 상주 판관 권길과 호장 박걸, 종사관인 윤섬, 이경류, 박호 등의 경군과 사근도 찰방 김종무, 의병장 김준신 등은
900여 사병과 함께 죽기로 맹세하고 역전 분투하였으나 전원이 순국하고 맙니다.
이로 인하여 선조는 상주 전역에 복호(復戶, 부역의 면제)를 내려 상주는 왕의 은전(恩典)을 입은 유일한 지방이기도 합니다.
이곳 상주 임란북천전적지는 1990년부터는 정화사업을 시행하여
상산관, 태평루 등 산재한 문화재도 이곳으로 옮겨와 역사의 산 교육장으로 조성하며
북천전투에서 전사한 종사관 윤섬, 박호, 이경류 3 충신과, 의병장 김준신, 김일의 2의사와
상주판관 권길, 호장 박걸, 사근도찰방 김종무, 순국 무명열사의 9위의 위패가 충렬사에 봉안되어 있습니다.
이 비각은 왜군과 싸우다 순국한 3충신과 2의사의 호국정신을 기리기 위한 '충신의사단비' 복제본과
상주목판관으로 봉직중에 순국한 권길의 충절을 새겨 둔 '판관권길사의비'입니다.
침전정
1577년(선조 10년)에 관정으로 지으진 것입니다.
임진왜란때 소실되었으며 1612년 (광해군 4년)에 상주목사 한술이 중건하고
1614년(광해군 6년) 상주목사 강복성이 천향정으로 개칭하였으며,
1693년(숙종 19년)에 목사 이항이 이향정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상주읍성이 흘렸으며 지방의 뜻있는 유지들이 정자를 사서
지금의 자리로 옮긴 후 침전정이란 이름으로 고쳤습니다.
현재 보수공사가 진행중인 태평루 입니다.
1808년에 상주목사 정동교가 팔작지붕으로 건립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상주읍성 관아문의 내삼문 밖에 있었으며 당시 동헌의 문루로 사용되었다가
일제강점기에 일제에 의하여 상주읍성이 허물어 지면서 상주향교로 옮겨졌다가
최근에 다시 이곳으로 옮겨졌습니다.
상주 상산관
이곳은 객사로서 고을 수령이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궁궐을 상징하는 전괘를 모시고 망궐레를 행하였으며,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들이 머물렀던 시설입니다.
1329년(충숙왕 15)에 목사 김영후가 중수했다는 기록이 있는것으로 보아 이보다 앞서 창건된것으로 보입니다.
여러차례 이전하다가 든대에 이르러 현 상주경찰서 자리에 있었으나
1940년 상주여자중학교에 옮겨와서 교실로 사용하다가 1991년 지금의 자리로 이건하였답니다.
문화재 정보 : 임란북천전적지
이용시간: 09:00~18:00
주소 : 경북 상주시 경상대로 3123
임란북천전적지 관리사무소 : 054-533-2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