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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제암교회 한국교회 순교유적지 제암리 3.1운동 순국기념관

워크뷰 2015. 2. 4. 09:53


화성 제암교회 일제의 양민학살사건 한국판 프랑스 오라두르쉬르글란 학살사건


화성 제암교회 순교유적지는 3.1운동 이후 일제가 저지른 양민학살사건 현장이며, 한국판 프랑스 오라두르쉬르글란 학살사건과 비슷하다.

3월 1일 서울에서 만세시위운동이 일어난 후 

3월 30일 제암리 인근 주민 천 여명이 발안 장터네서 만세시위운동을 일으켰으며,

           이에 일본 헌병들이 경고 사격 후 그들이 휘두른 칼에 유학자 이정근과 그의 제자 2명이 사망하였고, 

4월 2일 발안장터에서 시위를 벌이고, 일본은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천도교인과 기독교인 몇 명이 체포되어 고문을 당한후 석방한다.

            이러한 사태를 바라 본 주민들은 흥분하여 인근의 일본인 주택, 학교에 불을 질러 정미업자 사사키를 비롯한 수십명의 일본인들이 

            대피하였고, 이에 일본은 헌병과 순사 등으로 구성된 부대를 파병하여 마을들을 불태우고 주민들을 검거하기 시작한다. 

            이에 주민들이 격양하였고 

4월 3일 만세시위가 다시 일어나고. 이 과정에서 일본인 순사가 사망하기에 이른다.

4월 5일 발안장날이 되자 만세시위둔동이 다시 일어나게 되고, 일본은 아리타 도시오 중위가 지휘하는 부대를 제암리로 보내었고,

          제암리 주민들에게 만세시위과정에서 너무 심한 매질을 해서 사과하러 왔다며 15세 이상의 제암리 주민들을 예배당으로 모이게 하였다.

          그러나 일본군은 사격을 시작하였고 불을 질러 22명이 예배당 안에서 사망하였으며, 3명이 탈출하였으나 2명은 사망하고 한 명만 겨우 

          산으로 피신하여 목숨을 건졌다. 이 사건은 먼저 일어난 수촌리 학살사건을 파악하기 위해 수촌리로 가던 스코필드 선교사가 

          제암리에서도 학살사건이 벌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제암리로 달려가 유골을 수습하는 한편 상황을 파악하여 전 세계에 학살사건을 

          폭로했다. 국제적 여론이 악화되자 일본은 아리타중위에게 30일의 중근신 처분만 내리고 사태를 덮으려 일본은 우발적으로 발생한 

          사건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해방이 되기까지 제암리사건은 언급조차 못했고, 

1959년이 되어서야 기념비를 세울 수 있었다.

1969년에는 일본의 기독교인들이 사죄의 의미로 제암리 교회당을 재건하였는데, 일본 기독교인들은 이미 사건 직후부터 현장을 찾아 전모를 

        확인하고 일본 내 기독교신문에 고발기사나 추도시를 실었었다.

        이 교회당은 3.1운동 순국기념관을 지으면서 헐렸고 지금은 그 옆에 제암리교회가 건립되어 있다.



수원역에서 시외버스 9802번을 타고 제암리 버스정류장에 내린다.



"두렁바위"로 불리는 조선후기 전형적인 씨족 중심의 농촌마을인 제암리는 주민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고, 

3.1운동 당시 전체 33가구 가운데 2가구를 제외하고 모두 순흥 안(安)씨들이 모여 사는 집성촌이었다.

제암교회는 1905년 8월 5일 이 마을의 안종후라는 젊은이가 한학을 배우기 위해 서울을 왕래하다가 아펜젤러 선교사를 만나 예수를 영접하고,

자기 집 사랑방에서 예배를 드린 것으로 시작되었다. 강습소도 개설하여 부녀자들을 대상으로 한글교육을 함께 하였다.

한글을 배울 수 있다는 소문이 퍼져 멀리에 있는 사람들까지 교회로 모여들었으며, 1911년에는 8칸 자리 초가 예배당을 마련하게 되었다. 





▲3.1 운동 순국 기념탑

기념탑이 세워진 이곳은 제암리 주민들이 항상 나라 찾을 것을 위해 기도드렸던 예배당이 있었던 자리이며 사적 299호로 지정되어 있다. 



▲희생된 23인 상징 조형물

지난 시위때 너무 심하게 매질을 하여서 사죄하러 왔다고 예배당에 모이게 한뒤 사격과 방화로 23명의 목숨을 앗아간 일제 만행을 잊어선 안된다. 


2001년 3월 신축한 현재의 제암교회


3.1운동 순국 기념탑

1959년 4월 세워진 이 탑에는 이승만 전 대통령 친필이 새겨있다.


23인 순국 합동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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