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진교회의 시작 미 북장로교 선교부에서는 1890년 부산을 중요 선교지로 지목하여 배위량(W. Baird) 선교사를 부산으로 파송한다. 배위량은 미국 공사 헤어드(A. Heard)의 조력으로 부산진에 약 80평의 대지의 한옥을 확보, 동년 11월 그는 부인과 함께 당시 공관에서 일하던 미국인 가족들과 자기 집에서 일하던 한국인 몇 사람과 예배드리게 되었던 것이 부산교회(후에 부산진교회로 개칭)의 시작이다. 베어드는 평양의 숭실대학을 시작하고 발전시킨 교육 선교사였습니다. 베어드는 해외선교의 열정이 대단하였던 시카고의 매코믹신학교 출신입니다. 학업에 대한 그의 열정은 남달라서, 선교사로 활동하면서도 철학과 신학 박사 과정을 마칠 정도였습니다. 1891년 선교사로 한국에 들어온 베어드 부부는 몇 년 동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