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강릉여행 강릉 포병전공비
강원도 여행에서 만나는 역사 유적지 그중 이번 시간은 강릉지구 포병전공비입니다.
이곳은 강릉 숲사랑 홍보관 근처에 있어 홍보관에 주차하시고 오시면편리합니다.
오르는 길에 무궁화가 피어 있습니다.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다시 한번더 가지게 되는 무궁화입니다.
이곳 강릉지구 퍼병전공비는 제18 포병대대 용사들의 투혼을 기리기 위해 민, 관, 군의 뜻을 모아
1991년 12월 11일 건립되었습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불법 남침한 적 제5사단과 마주한 아군은 제8사단이었는데,
사단 전체가 중과부적으로 대관령으로 철수하게 되자 포병 용사들이 강릉시민을 보호하고
적의 진출을 저지하기 위하여 화력과 백병전으로 맞설 수 밖에 없었습니다.
강릉 8사단 제18대대는 105밀리 포 5문을 사천면 노동하리 지역에 배치하였다.
석교 2리 뒷산에 관측소를 설치하고 당시 장경석 대대장을 중심으로 사력을 다하여
주문진 북방을 향해 지원 사격을 가하였으나 아군은 주문진 이남까지 밀려 내려왔다.
18대대 장병들은 다시 105밀리 포를 사천초등학교로 이동하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가래골 뒷산의 관측소와 연곡천을 사이에 두고 국군과 북한군이 대치되어
사력을 다한 전투를 개시하였다.
18대대는 사천초등학교 운동장과 덕실리 앞에서 맹렬한 지원 사격을 계속 가하였다.
그러는 동안 북한군은 육지를 포기하고 경포, 강문 쪽으로 돌아 상륙하여 삽시간에 사천 쪽으로 밀어닥쳤다.
국군은 계속 패하는 상황에서 바다 쪽을 헤아릴 틈이 없었던 것이다.
북한군이 사천면 이남으로 넘어왔으니 18대대 장병들은 더 이상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때 포병 용사들은 대부분 가족을 북에 두고 공산당이 싫어 월남한 서북청년단이었던 터라
신분 노출을 거려 군번줄을 사천초등학교 운동장에 묻고 옥쇄를 각오하였습니다.
이 광경을 목격한 사천초등학교 학생과 교직원이 주먹밥을 나르고 물을 떠서 화포의 포신을 식혔으며,
주민들은 부상병을 보호하였습니다.
그 결과 아군 8사단이 무사히 철수하여 재편성 할 수 있었고 강릉시민도 피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18포병 용사들의 전공은 훗날 낙동강 방어 구축과 영천전투 승리의 발판이 되었으며
포병으로서 전대미문의 공을 세운 것입니다.
이러한 전훈을 이곳에 기념하고자 1980년 11월에 영동지구 전적비 건립추진위원회가 발촉 되어
18 포병대대와 함께 노력한 결과 각계 각지에서 보내온 후원금에 의해 건립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