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경상북도

경북 영덕여행 한국전쟁을 승리로 바꾼 장사상륙작전 전승 기념공원 장사해수욕장

워크뷰 2018. 6. 25. 07:34

경북 영덕 여행 한국전쟁을 승리로 바꾼 장사상륙작전 전몰용사 위령탑 장사해수욕장

 

장사상륙작전 전물 용사 위형탑


경북여행을 하기 위해 동해안 도로를 타고 영덕으로 올라갑니다.

영덕에 들어서면 먼저 가보아야 할 곳이 바로 장사해수욕장인데요

이곳을 왜 제일 먼저 가보아야 할 곳이라고 하냐면

우리의 자유와 번영이 이곳에서 흘린 호국영령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1950년 9월 14일 새벽 5시 40분쯤 펼쳐진 장사상륙작전은 

인천상륙작전 하루 전 북한군의 눈을 동해로 돌리기 위해서 펼친 위장 작전이었다. 

당시 학도병 800여명은 부산에서 해군수송함인 LST(양륙함) 문산호를 타고 장사해변으로 상륙,

북한 최고 정규군과 치열한 전투를 별였다. 

이 과정에서 학도병 200여명이 전사했고, 문산호는 장사 앞바다에 침몰해 지금도 바닷속에 가라앉아 있다. 


90%가 학생신분으로 호국일념으로 자원입대하였던 대원들은

 전후방을 교란시키는 유격대대에 편성되었고

이 전투를 수행 중 8일 간이나 식량보급도 없는 극한상황에서 적 보급로 및 퇴각로 차단 등의 혈전을 치렀다


이때 전사한 전우들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찬양하고 호국충정을 기리며, 

후세들에게 나라사랑하는 마음을 심어 주고자

 1980년도부터 매년 9월 14일 이곳에서 위령제를 거행하기 시작했으며, 

많은 사람들의 후원과 특히 경기도 양평 청운사

석일산 주지스님의 도움을 받아 1991년 9월 위령탑을 건립 제막하였다.

 

 

장사 상륙작전 그날은 오늘 본 파도보다 더 톨은 파도가 있었다.

1950년 6월 25일 미명을 기하여 북한군의 기습 남침으로 

아군은 낙동강을 최후 방어선으로 적과 치열한 공방전을 계속하고 있을 때

UN군 총 사령관 맥아더 장군은 총 반격전을 위한 인천상륙을 결심하고, 

동해안 장사동 적 후방 적전상륙의 양동작전 명령을 하달함으로써 시작된 전투이다.

 

육본직할독립 제1유격대대(대대장 이명흠)는 대원 772명, 

지원요원 56명과 함께 LST 문산호(2,700톤급)로 부산항을 9월 13일 15시경 출항

다음날 새벽 5시경 장사동 해안 상륙지점에 도달하였으나, 

케니아호 태풍으로(파고 3~4m)  배는 죄초되고,

적의 포화속에 대원들은 구국일념의 투혼으로 악전고투 끝에 상륙에 성공 

적 후방 교란, 보급로 차단, 퇴각로를 봉쇄하고, 적의 전의를 상실케하여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키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러나 이 상륙작전에서 아군은 학도대원등 전사 139명, 부산 92명을 포함하여 수십 명의 행불자를 발생새켰다.

그 후 육군본부에서는 이 전투에 참전한 유격대원에게 우국청년(의사)이라 호칭하였다.

 

장사상륙작전 기념관은 아직 개방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에는 볼 수 없었던 조형물이 올해 설치되었다.

이 조형물을 보니 한층 더 그날의 모습이 연상된다. 장사 상륙작전 그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가 있다.


그리고 새로운 조형물을 하나 더 발견하였다.

청춘에 불꽃

아 장사 학도병

애틋한 시가 적혀있다.

 

마침 관광버스 한대가 서더니 어르신들이 이곳에 와서 관람을 하신다.

그때의 모습을 회상하시는지 모르겠다.

 

장사상륙작전 전승 기념공원 조형물

 

여기에 있는 자료 사진만 보더라도 그때 그당시의 모습을 연상할 수 있다.

이 모습을 보고 나라면 저 적진으로 뛰어들었을수 있었을까 반문하여 본다.

닥치면 할수 있으려나 학도병의 용기에 감탄할 뿐이다.

 

장사 상륙작전

그들의 희생을 다시 한번 생각하여 본다

그리고 고개를 숙인다.

 

장사상륙작전 전승 기념공원을 방문한 어르신들의 모습에서

대한민국의 자유와 번영을 느낄수 있다.

이 나라를 위하여 흘리신 전몰용사님 고맘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제 다시는 이 나라가 전쟁의 소용돌이속에 희말리지 않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장사상륙작전전승기념공원

경북 영덕군 남정면 장사리 70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