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도보 여행/역사길

기장 죽성리 왜성

워크뷰 2011. 1. 10. 11:10

드림 촬영장을 지나서 조금 걷다보면 골목길과 죽성교회을 지나서 기장 왜성으로 올라가는길이보입니다

기장왜성은 일본성의 모습을 볼수 있는곳 입니다

임진왜란대 우리 백성을 강제 동원하여서 축조된것으로 민족의 아픔이 서려 있어서 헐어버리자라는 의견도 있지만
 
보존을 하여서 우리 후손에게 알려야 한다는 의견에 지금 보존을 하고 있습니다

일본건축가들이 자주 이 곳을 방문을 한다고 합니다

 


주택 담벼락에 무언가 심상치 않게 보이는 물건이 하나의 담에 묻혀있다






우편함이 이색적인  주택들
























왜성에서 바라본 죽성 일대


한 일가족이 기장왜성을 둘러 보고 있습니다


한국의 성과 일본의 성 축성방식의 차이점

 

이 성은 임진왜란 당시 왜군의 장수인 구로다 나가마사(黑田長政)가 축성한 것으로, 임진왜란ㆍ정유재란 중 왜군이 조선ㆍ명나라 연합군의 공격을 방어하고 남해안에 장기간 주둔하기 위해 쌓은 성 가운데 하나이다.

1594년(선조 27) 봄에 왜군은 전남 여수에서 울산에 이르는 우리나라 동남해안 일대에 성을 쌓고 이 성들을 근거지로 삼아 장기전으로 조선을 굴복시키려 하였다. 이러한 계획에 따라 왜군은 1594년 5월 왜장 모리 데루모토(毛利輝元)이하 20여명의 장수로 하여금 서로 협력하여 성을 쌓게 하였는데, 죽성리왜성은 이 때 쌓은 왜성 중의 하나이다.

이들 왜성은 대개 강이나 바다에 근접한 구릉을 택하고 수송, 연락관계 등을 참작하여 선박의 출입이 편리한 장소에 축성하는 방법을 취하였다. 이성은 죽성마을의 뒷편 해안에 접해있는 요충지를 택하여 쌓았는데, 둘레가 약 960m이고 성벽 높이는 약 4m이며 3단으로 축조되어 있다.

이성은 증산왜성(일본에서는 부산포성으로도 쓰고 있음)과 형태가 비슷한데 일본에서는 기장성이라고도 하고 있으며, 울주군의 서생포성(西生浦城)과 울산의 학성(鶴城), 그리고 증산왜성을 연결하는 요충지에 자리하고 있다. 성곽의 주요 부분은 아직도 잘 남아 있지만 외곽 부분은 밭과 민가에 의해 많은 부분이 점거되어 있다.

죽성리왜성은 인근의 두모포진성과 접속한 상태로 남아 있어 우리나라 축성법과 일본식 축성법을 비교 연구하는데 좋은 자료이다.

출처 기장군청 -->http://tour.gijang.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