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기념물 제14호 (동래구)
온정은 온천을 말하는 것으로,
이 비는 동래부사 강필리가 동래온천을 수리한 공로를 기록하고 있다.
높직한 석축 위에 비를 세웠는데 네모진 받침돌 위로
모서리 양끝을 사선으로 처리한 직사각형 비몸을 세운 형태이다.
비문에 의하면 이 온천은 조선 숙종 17년(1691) 건물을 짓고
돌로 두 개의 탕을 만들어 놓았다.
그 후 건물이 낡고 탕이 막혀 이용하기에 불편하여,
새로 부임한 부사 강필리가 이를 수리하여
남탕과 여탕을 나눈 9칸짜리 건물을 지었는데,
그 모습이 화려해 마치 꿩이 날으는 것 같았다고 한다.
비는 영조 42년(1766) 10월에 건립되었다.
온정은 온천을 말하는 것으로,
이 비는 동래부사 강필리가 동래온천을 수리한 공로를 기록하고 있다.
높직한 석축 위에 비를 세웠는데 네모진 받침돌 위로
모서리 양끝을 사선으로 처리한 직사각형 비몸을 세운 형태이다.
비문에 의하면 이 온천은 조선 숙종 17년(1691) 건물을 짓고
돌로 두 개의 탕을 만들어 놓았다.
그 후 건물이 낡고 탕이 막혀 이용하기에 불편하여,
새로 부임한 부사 강필리가 이를 수리하여
남탕과 여탕을 나눈 9칸짜리 건물을 지었는데,
그 모습이 화려해 마치 꿩이 날으는 것 같았다고 한다.
비는 영조 42년(1766) 10월에 건립되었다.
상세문의 | 부산광역시 동래구 문화공보과 051)550-40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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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에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한 것에
동래온천이 한몫을 한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동래온천의 역사는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시대에는 온정을 관리하는 관속인 온정직을 두었고
욕객들을 위해 온정원을 설치하고 역마까지 두었다.
동래온천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삼국유사』에서 볼 수 있는데
신라의 재상 충원공이 이곳에서 목욕을 하고 돌아갔다는 내용이다.
『신동국여지승람』
에는 물이 계란을 익힐 만큼 뜨거웠으며
병자가 목욕을 하면 병이 잘 나아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던 곳이라고 적고 있다.
58년엔 이곳이 호수였다고 한다!
노천족욕탕의 옆 스파윤슬길에 붙어 있는 기록사진관!
도시철도예술제가 열리고 있는 부산대역으로 천천히 걸어가 봅니다 |
부산대역의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