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감정기때 부산 동래구 금강공원으로 멋대로
옮겨 방치한 부산 문화재로
조선시대 동래부 동헌의 망미루와 독진대아문,
동래읍성 남문에 있던 내주축성비,
온천천에 건립했던 이섭교비.
옮겨 방치한 부산 문화재로
조선시대 동래부 동헌의 망미루와 독진대아문,
동래읍성 남문에 있던 내주축성비,
온천천에 건립했던 이섭교비.
조선시대 관청이었던 동래부사청의 대문이다. 조선 인조 14년(1636)에 동래부 동헌인 충신당이 세워질 때 함께 지은 것으로 추정한다. 원래는 동래부사청 동헌의 입구에 있었으나20세기 초에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겨 세웠다. 문 가운데에 ‘동래독진대아문(東萊獨鎭大衙門)’이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는데, 이것은 효종 6년(1655) 동래부의 군사권이 경상좌병영의 지휘 아래 있던 경주진영에서 독립하였음을 뜻한다. 앞면 3칸·옆면 1칸인 3문 형식의 건물로, 사방이 개방되어 있고 문짝은 달려 있지 않다. 독진대아문은 규모는 작지만 흔하지 않은 3문 형식의 아문건물 중 하나이다. 출처-->문화재청 |
독진대아문의 뜻은
동래부 군사지휘권이 경상좌병영 휘하 경주 진영에서 독립하여
동래독진이되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조선후기에 동래부는 일본과 가까운 거리에 있었기 때문에
국방과 외교상중요한 곳이었다.
국방과 외교상중요한 곳이었다.
이문의 첫 건립은 1636년 (인조14) 동래부사 정양필이
동래부 동헌을 건립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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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공원이 일제강점기때 일본인의 정원으로 활용되었었군요ㅠ.ㅠ
우리의 문화재가
이제 본래 있던 다리로 다시 옮겨야 한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는것은 반가운 소식입니다
잠시후 임진 동래의총으로 떠납니다^^
동래부 동헌을 건립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되었던 동래읍성을 동래부사 정언섭이 대대적으로 다시 쌓은 후 이를 기념하고자 세워놓은 비이다. 형태는 네모반듯한 받침돌 위로 비몸을 올리고 머릿돌을 얹은 모습이다. 받침돌 윗면에는 도드라진 연꽃무늬를 둘러 새겨 놓았으며, 비몸의 앞면에는 축성에 관한 사실을 20행으로 새기고 뒷면에는 축성에 종사한 임원의 명단을 기록하였다. 머릿돌에는 한 쌍의 용이 여의주를 물고 있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비문은 김광악이 짓고 송광제가 썼으며 글씨는 유우기의 것이다. 영조 11년(1735) 남문밖 농주산에 세운 것을, 영조 41년(1765)에 옮겨 세웠다가 순조 20년(1820) 다시 남문거리로 옮겼으며, 지금의 자리로 옮긴것은 일제시대이다. 동래성 연구의 가장 정확한 자료가 되고 있으며, 동시에 조선조 후기 성축사의 연구에도 좋은 자료가 된다. 출처-->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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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섭교’라는 다리를 놓은 후 그 기념으로 세워놓은 비로, 다리를 놓기까지의 과정과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 직책을 기록하고 있다. 이섭교는 동래부사 이희룡이 이웃한 주민들 계의 도움을 얻어, 수안동과 연산4동 사이에 흐르는 수영천에 놓았던 돌다리로, 다리 아래가 3개의 홍예(무지개모양)로 연결되어 있다. 비는 자연 암반을 받침돌 삼아 그 위로 비몸을 세운 모습이다. 비문에는 ‘옷을 걷어올리고 건너다니던 냇물에 나무다리를 놓았지만 나무가 쉬 썩어 해마다 다리를 고쳐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몇 사람이 뜻을 모아 돌다리를 놓기로 하고 돈을 모아 조선 숙종 21년(1695)에 다리를 놓았다’는 내용을 적고 있으며, 김진한이 시작하여 신만재가 완성하였다는 내용도 함께 적고 있다. 출처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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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연합뉴스) 민영규 기자 = 부산시의회 권오성 의원(동래구 2선거구)은 10일 부산시의회 5분 자유발언에서 "한일병합 100년을 맞이한 만큼 일제 강점기때 멋대로 옮겨져 방치되고 있는 부산지역 문화재를 복원하자."라고 제안해 눈길을 끌었다. 권 의원의 발언자료에 따르면 1931년 당시 일본인 히가시하라 카지로오의 개인 정원이었던 부산 동래구 금강공원(당시 금강원) 앞에 조선 동래부 동헌 앞에 있던 망미루(望美樓)가 옮겨졌다. 또 동래부 동헌의 대문이었던 독진대아문(獨鎭大衙門) 이 금강공원으로 이전돼 뼈대만 남았고, 동래읍성 남문에 있던 내주축성비(萊州築城碑 )와 온천천에 건립한 이섭교비(利涉橋碑) 도 산속에 방치돼 있다. 권 의원은 "이들 문화재는 제자리로 복원해 역사적인 자산으로 활용해야 할 것" 이라고 주장했다. 출처 -->연합뉴스 |
금강공원이 일제강점기때 일본인의 정원으로 활용되었었군요ㅠ.ㅠ
우리의 문화재가
이제 본래 있던 다리로 다시 옮겨야 한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는것은 반가운 소식입니다
잠시후 임진 동래의총으로 떠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