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교회

[목포여행/목포양동교회]목포에 복음의 씨가 뿌려진 맨처음 터

워크뷰 2013. 3. 3. 05:00

 일제의 승리를 기원하라는 설교를 하지 않고 오히려 약육강식이란 설교를 하여

경에 체포 감옥게서 얼어죽게 만든 일본인의 손에 의해 순교한 박연세목사!

 

1897년 봄 미국 남 장로교 소속 유진 벨 선교사와 헤리슨 선교사가

나주에서의 선교가 어렵게 되자 목포로 선교지를 이동했습니다

유진 벨 선교사와 헤리슨 선교사는 목포에 도착한후 초분터에 자리를 잡고

목포선교부와 목포양동교회를 설립하였습니다

 

 

 

여기에 오원선교사가 합세하자 목포진료소를 개설하였습니다

1901년 벨 선교사의 부인 로티선교사가 전주에서 남매를 두고 죽음을 맞이합니다

 

양동교회 성도들은 1903년 석조예배댱을 신축하여 로티선교사의 죽음이

헛되지 않음을 입하였습니다

 

이 곳은 목포에 복음의 씨가 뿌려진 맨 처음 터

 

선교 100주년을 맞아 개항이후 처음으로 목포의 모든교회가 연합하여 1986년 부활절 예배를 드리고

그 헌금으로 여기 선교 기념비를 세우다

1987년 10월 선교기념비 건립위원회

 

 

 

문 위에 글이 쓰여있습니다

년 십 빅 구 천 일 성 강 쥬

무슨 뜻일까요?

 

본당 옆문

 

오랜 역사의 장의자가 있습니다

장로성직 임직기념

 

1940년 초 일본의 지배가 거세지면서 일본 승리를 기원하는 예배를 드리도록 강요하자 이에 굴하지 않고

양동교회 당회장 박연세목사는 "약육강식" 이란 제목으로 설교를 하자 이것이 문제가 되어

일경에 체포가 됩니다

 

재판장에서 재판관의 심문에서 "천황이 높으냐? 하나님이 높으냐?

"예수가 재림하면 천황도 심판을 받는다'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박연세 목사는 천황모독죄로 목포 광주형무소를 거쳐 대구 형무소에서

1944년 2월 추위에 동사합니다

 

 

 

박연세 목사

박연세 목사는 본 교회 제 10대 목사로서 일제에 항거하시다가 1942년 11월 9일 밤 예배 후 재잭 30여명과 함께 목포경찰서에 구속되어

3년형의 선고를 받고 복역 중 대구형무소로 이감되신 후 1944년 2월 15일 대구형무소에서 순교하셨습니다

이에 저희 온 성도들은 박연세목사님의 순교 60주년을 추모하며 여기 순교비를 제막하는 바입니다

 

 

 

 

특이하게 왼쪽 출입문 위에 태극 문양이 새겨져 있습니다

 

기독교유적지 목포 양동교회

 

 

 

선교 110주년 기념관입니다

 

 

 

 

 

1911년 건축된 양동교회의 모습

1953년 8월 16일 기독고장로회와 예수교장로회로 나뉘어져

현 장소는 기장이 이어가고 예장은 임시로 정명어중 대강당을 임시처소러 사용하다가

정명여고 앞에 새로 교회를 신축합니다

 

목포양동교회

전남 목포시 양동 27번지

061)245-3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