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안내
부산시 부산진구 초읍동 어린이대공원을 기점으로 하여 만덕고개- 만남의숲- 선암사 -사상구 모라동 신라대학교로 내려오는 코스입니다.
*초읍 어린이대공원으로 오시는 방법
-기차로 오시는 경우
부산역에서 하차후 버스정류소에서 시내노선버스 81번을 승차하시면 됩니다
요금 현금 1,000원
부산버스노선안내 사이트 바로가기 --> http://bus.busan.go.kr/
-승용차로 오시는 경우
경부고속도로 구서톨게이트를 빠져나오면 오른쪽으로 나가는 길의 도시고속도로로 올리신후
문현램프로 내려 오셔서 전포로를 이용합니다
전포로를 따라가면 부전4거리가 나오는데 그곳에서 부암진구청방향으로 좌회전합니다
그리고 부암진구청 4거리 신호에서 우회전 하신후 계속 직진을 하시면 초읍 어린이대공원이 나타납니다
주차는 어린이 대공원 주차장에 하시면 됩니다
주차장은 신용카드나 부산의 교통카드로 요금정산이 이루어집니다.
7월 3일 백양산 나들숲길 도보여행 후기
1,어린이대공원 출발
어린이대공원 부산진구 초읍동에 위치한 면적 5,060,608㎡로 부산의 중심지 서면에서 약 3㎞ 북쪽에 위치한 이 공원은 1972년 성지곡 시민공원으로 개발하였다. 연 15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아오는 곳으로 처음은 성지곡공원으로 명명하였다가 1978년 '세계아동의 해'를 맞이하여 어린이대공원으로 개칭하였다. 이 공원은 옛날 신라시대 성지(聖知)라는 지관이 팔도강산 명산을 답사하다가 이곳이 명산이라 하여 명산혈맥이 철장을 꽂았다는 데서 "성지곡(聖智谷)" 이란 이름이 생긴 것으로 전하여 진다. 공원의 주변 지형은 수원지를 중심으로 하여 북으로 부태고개와 함박고개가 있으며, 이 고개 및 능선은 만덕고개로 연결되어 금정산에 이른다. 공원에는 수원지(면적 7,920㎡)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시설물 및 조각품이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수원지 공사는 1907년 일본인들이 착공하여 1909년 9월에는 준공되었으며 당시 규모나 시설이 가장 좋은 수원지로 알려졌으며 인구 30만명을 예상한 시설이었다. 제방 높이가 27m로 당시 서면에서 수정동까지 급수하였으나 1972년 낙동강 상수도공사가 완성됨에 따라 유원지로 이용하게 되었다. |
2,성지곡수원지
성지곡수원지 어린이대공원이 자리잡고 있는 동천의 상류계곡으로 상류에는 성지곡수원지가 있다. 부산의 이름난 경승지로 전설에 의하면, 신라시대 유명한 풍수지리 지관인 성지라는 사람이 전국의 명산을 찾던 중 경상도에서 가장 빼어난 골짜기를 이곳에서 찾고는 성지곡으로 명명하게 되었다 한다. 성지곡 상류에 있는 수원지이다. 이 수원지는 1907년 일본인들에 의해 착공되어 1909년 9월에 완공(면적은 7,920㎡)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인 상수도원의 수원지로서 제방의 높이가 27m에 이르는 당시로서는 거대한 토목공사였고, 서면에서 초량왜관(현 용두산공원 일대)이 자리잡고 있었던 지금의 동광동까지 급수한 유명한 수원지에 해당된다. 그러나 1972년 물금에 낙동강 상수도 취수공사가 완공됨에 따라 이 수원지는 유원지와 어린이대공원으로 이용되고 있다. |
3,만남의 숲
포토존: 성지곡수원지가 바라보이는 장소
4,선암사,
선암사 선암사는 신라 애장왕 3년(802) 경남 합천 해인사와 같은 해에 창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선암사『중수기(重修記)』에 의하면, '선암사의 처음 이름은 견강사(見江寺)로 동평현성(오늘날의 당감동 일대) 안에 있었다'라고 한다. 그 견강사는 조선조 정종 2년(400)에 부산포의 자성대 동북쪽으로 옮겨 원래 이름 그대로 견강사라 하고 현재의 선암사 자리에 또 하나의 절을 세워 선암사라 했다. 그러나 자성대 동북쪽으로 옮긴 견강사는 폐사되었는데 그 원인은 임진왜란 때 불탄 것으로 보이며, 지금은 흔적조차 없다. 지금의 선암사도 임진왜란 때 불탔다가 다시 세운 뒤 중수와 개축을 거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절의 중요기록인『선암사기』를 지금은 찾을 길이 없다. 일제시대 때『부산부사원고』를 쓴 도갑(都甲)이『'선암사기』를 보고 쓴 기록에 의하면, 선암사의 전신인 견강사에 불상이 있었는데 왜구들이 약탈해가서 일본에 깨끗하지 못함 무덤아래 절을 짓고 예배를 올리니 때아닌 재앙으로 목숨을 잃은 자가 많았다고 한다. 견강사 당시의 불상은 인도에서 모셔온 철조불상이라 한다. 그러나 그 불상의 행방은 알 길이 없다. 이후 중수와 개수를 거치면서 대웅전의 크기에 알맞은 불상을 안치하였으나 임란 때 병화로 없어지고, 이후 다시 주조하여 안치하였다 한다. 선암사 서쪽은 수십장(數十丈)이나 되는 절벽이며, 그 바위에서 '신라의 국선(國仙)인 낭도(郎徒)들이 심신수련을 하였다'하여 선암사라 일컬어지게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선암사의 한자 표기는 선암사(仙巖寺)라고도 쓰고 있으나, 옛 기록은 선암사(仙庵寺)로 기록하고 있다. 선암사가 있는 산은『동래부지(1740)』『동래부읍지(1832)』에는 선암산(仙庵山)이라 했는데 이는 선암사에서 온 말이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