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도시철도 수영역에 가시면
6,25 전쟁 발발 62주년 사진 전시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사진을 하나하나 보는 순간순간마다 가슴이 미여집니다
1951년 6월 용당동
당시 슈샤인보이로 통하던 구두딱이 소년
1951년 감만동 해안
1951년 5월 감만동
청보리가 푸르른 전형적인 농촌마을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1951년 5월 감만동
청보리가 푸른 5월의 전형적인 농가마을 모습이다
1951년 6월의 감만동의 해안의 해녀
멀리 영도 봉래산이 보인다
1951년 6월 용당동 해안마을
1951냔 6월 감만동의 집짓는 모습
피난내려온 친척을 위해 집을 증축하고 있는 모습으로 보인다
1951년 6월 감만동 농가 마당풍경
1951년 6월 용당동의 보리타작
1951년 5월 거제리 들판
멀리 보이는 산세로 보아 거제리 들판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장소의 고증이 필요하다
1951년 5월 옜 안락서원 인근
동래부사 김규진의 영세불망비가 보인다
1951년 6월 감만동 해안언덕의 보리밭
바다건너 영도가 보인다
1952년 가을 남산동
1951년 6월 감만동
구김살 없는 아이들의 표정이 정겹다
1951년 6월 감만동
어머니와 누나가 덥숙하게 자란 파를 옮겨
심고 있는 옆에서 동생을 돌보고 있다
1951년 5월 감만동의 피난민촌
1952년 온천장 시외버스 터미널
아이들의 표정이 해맑다
1952년 여름 하야리야부대앞
미국의 건국기념일을 맞아 하야리야부대에서
축하행사를 벌이던날 부대앞의 모습
1951년 5월 영도 청학동
1951년 5월 감만동
형이나 누나가 동생을 업고 돌보며 키웠던 시절
1951년 6월 우암로 모습
대부분 비포장도로였던 시절 차량이 통과하면서 먼지를 일으키면
길가 도랑의 물을 퍼서 뿌려주곤 했다
1952년 유엔묘지 입구
1952년 겨울,전포천변의 피난민 판자촌
당사 대부분 부산의 하천변에는 마치 수상 가옥처럼
이렇게 하천에 걸친 피난민 판자촌을 형성하고 있었다
1951년 6월 용당동 들녘의 지게
한국전쟁으로 파병된 미군병사들에 의해 지게는 간편한 운반수단으로
세계적 명품이 되었다
1951년 6월 감만동 아이들
동생을 돌보며 공깃돌 놀이를 하고 있다
1951년 6월 미군부대 여성군무원
옷차림이나 신발에서 다소 여유가 있어 보인다